2012년 6월 27일 수요일

10. 주자: 성즉리性卽理 육상산: 심즉리心卽理

1. 역사적 맥락에서 본 주자

주자는 정이의 리학理學을 완성하였다. <송사宋史>에 따르면 주자, 즉 주희朱熹(1130-1200)는 휘주徽州 무원 사람이다. 주희는 경전을 널리 연구하였고 식견있는 선비들과 두루 교류하였다. 나종언羅從彦의 제자는 이통李?이었는데 주희는 그에게서 배웠다. 주희는 19세 때 과거에 합격한 이후 평생 그 직職을 유지하였고 또한 한직이었으므로 방대한 글과 주해를 쓰면서 몰려드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주희는 말년에 간신의 음모로 부당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주희 이전의 정호와 정이는 심학心學Idealism과 리학理學rationalism의 길을 열었다. 주희는 정이가 타계한 지 23년 후에 태어났는데 장재, 정호, 정이, 소강절, 주돈이 등 도학자들의 사상을 종합하여 리학理學을 완성하였다. 주희는 송나라 영종寧宗 경원慶元 6년인 1200년 이질로 타계하였다. 향년 71세였다. 주자는 <어류語類>를 남겼다.


2. 리理, 태극太極

주자는 주돈이의 태극太極, 소강절의 수數, 장재의 기氣, 정호와 정이의 형이상 형이하의 리理 기氣를 융합하여 독자적인 형이상학을 완성하였다. 주자는 말하기를 "무릇 형체形가 있고 형상象이 드러난 것은 모두 기器이다. 이 기器는 리理에 따르므로 도道이다."라고 하였다. 도道는 추상적 개념을 말하고 기器는 구체적 사물을 말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형이상의 존재形而上者는 형체形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은즉, 리理이다. 형이하의 존재形而下者는 실상情도 있고 모습狀도 있은즉, 기器이다."라고 하였다. 형이상자는 시공을 초월하여 자존subsist하는 것이고 형이하자는 시공 안에서 존재exist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무극無極은 태극太極이므로 사물이 그곳에서 찬란히 빛난 것과는 다르다. 당초 그곳에는 한 사물도 없었고 단지 리理만 있었을 뿐이다. 리理가 많아질 수 있으므로 사물 또한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극極이란 기준을 말한다. 무극無極이란 차이가 나지 않는 완전한 기준이고 태극太極이란 가장 우수한 기준이란 뜻이다. 이를테면 정사각형이 직사각형과 다른 이유는 정사각형의 무극, 즉 리理에 따라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정사각형의 무극은 태극인 것이고 정사각형의 태극은 그 사물의 리理이다. 주자는 무극과 태극과 리를 동일시 하였다. 리理는 사물이 실현되는 기준이다. 이것이 주자의 포인트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은 그 안에 리理가 있다는 것이다. 무릇 세계天地에 어떤 사물이 생성되었다는 것은 그 안에 리理가 존재한다는 것이다."고 하였다. 리理는 사물에 앞서서 선험적으로 존재한다. 계단의 벽돌에도 벽돌의 리理가 이미 있고 의자에도 의자의 리理가 이미 있다. 이것이 주자의 포인트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리理와 관련하여, 사물이 아직 생성되지 않았더라도 그 사물의 리理는 존재한다. 그 리理만 존재한다는 것은 사물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수레가 없었을 때도 수레의 리理, 즉 이데아는 이미 있었다. 따라서 수레는 선재先在한 수레의 리理에 따라 생성된 것이다. 수레의 리理는 수레의 완전한 형식이자 극極, 즉 기준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태극太極은 최고선善에 도달하는 리理이다. 주돈이가 말한 태극은 세계 모든 인간과 사물중에 최고선으로서의 표덕表德이다."라고 하였다. 주희의 태극은 플라톤의 선善의 이데아이고 아리스토테레스가 말한 신神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태극에는 음양오행의 리理가 다 들어있으니 텅 비어空있을 리가 없다. 만약 비어있다고 하면 불교의 성性과 비슷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극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허空虛가 아니라 실제로 음양오행 등의 리理로 꽉 차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태극은 형이상의 도道이고 음양陰陽은 형이하의 기器이다. 현상을 관찰해보면 그 운동動과 정지靜는 같은 때에 일어나지 않고 음과 양은 같은 위치에서 일어나지 않지만 태극은 어디서나 존재한다. 태극은 공허하고 고요하고 아무런 조짐이 없어보이지만 운동動과 정지靜, 음과 양의 리理가 그 안에 구비되어 있다."고 하였다. 태극은 형체가 없으므로 비어있는 듯 보이나 온갖 리理가 다 구비되어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 리理가 존재한 후에야 기氣가 생성되고 이 기氣가 생성된 후에야 리理는 안주할 공간處이 있게된다. 크게는 세계天地, 작게는 땅강아지와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성이 다 그렇다."고 하였다. 리理가 먼저 있고나서 구체적 개체가 생성된다. 주희는 세계의 생성도 그렇다고 보았다. 각 사물에는 각 리理가 구비되어있고 전체로서의 태극도 구비되어있다. 주희는 말하기를 "인간마다 하나의 태극이 들어있고 사물마다 하나의 태극이 들어있다."고 하였다. 주희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각각 태극을 구비하고 있다. 마치 달은 하나이지만 여러 개의 접시 물에 달이 여러 개 생기는 것과 같겠다. 한편, 화엄종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경계는 하나의 구체적 사물 속에 모든 구체적 사물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또 천태종에 따르면 한 사물의 법성法性은 그 사물의 잠재태라고 본다. 주희에 따르면 한 사물에 모든 사물의 리理인 태극이 구비되어있다고 본다. 즉,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3. 기氣

본체세계의 형이상은 리理이고 현상세계의 형이하는 기氣이다. 리理는 형상形相에, 기氣는 질료質料에 비유될 수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세계天地 간間에는 리理도 있고 기氣도 있다. 리理는 형이상의 도道로서 사물을 생성하는 근본本이며 기氣는 형이하의 도道로서 사물을 생성하는 도구이다. 인간과 사물이 생성될 때 리理는 반드시 성性이 되고 기氣는 반드시 형체形가 된다."고 하였다. 리理는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반면에 기氣는 현상세계에서 리理에 따르게 되어있다. 이를테면 벽돌로 집을 지을 경우 집이라는 형식은 리理이고 벽돌이라는 사물은 기氣이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리理는 본체세계에 존재하지만 실제적으로 리理는 현상세계의 사물에 존재한다. 주자는 기氣 안에서 보게되는 리理의 공간에 대하여 말하기를 "음양오행이 뒤얽혀 있어도 조리를 잃지 않는 것은 바로 리理 때문이다. 만약 기氣가 모여 붙지 않은 때는 리理 또한 붙을 판所이 없다. 기氣는 사물화되는데 사물화된 기氣에는 리理가 붙어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세계天地가 생성되기 전에 필경 리理만 존재했다. 이 리理가 존재함으로써 곧 세계天地가 생성되었으니 이 리理가 없으면 세계天地도, 인간도, 사물도,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이 리理가 있으면 곧 기氣가 흘러나가 모든 사물을 기른다."고 하였다. 리理는 모든 개체 사물의 생성에 앞서 존재한다. 리理는 곧 태극이다. 태극太極은 곧 무극無極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돈이가 무극이라고 한 이유는 그것은 방향과 장소도 없고 몸체形와 모습狀도 없으나 사물로 생성되기 이전에도 존재했고 사물이 된 후에도 존재하며 음양의 밖에 존재하나 음양 안에서 늘 행行하고 모든 사물에 관통되어 있으므로 없는 곳이 없이 존재하여 애초부터 소리, 냄새, 그림자, 반향이 없었다."고 하였다. 주자는 주돈이의 태극의 개념을 여과없이 받아들였다. 주돈이의 '무극은 태극이다無極而太極'라는 명제는 노자가 말한 '세계의 모든 사물天地萬物은 유有에서 생겼고 유有는 무無에서 생겼다.'는 명제와 가깝다.


3. 성性

주자는 말하기를 "인간이 생성된 것은 리理와 기氣가 합하였기 때문이다. 세계의 리理즉, 천리天理는 크고무한하나 기氣가 없으면 리理는 붙을 곳이 없다. 따라서 음양陰陽의 두 기氣가 반드시 모여서 붙들려 있은 후에야 리理가 붙을 곳이 있게 된다. 인간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그 모든 기氣에는 리理가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기氣와 리理가 합하여 생성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의 기氣에는 리理가 붙어 있다. 그 붙어 있는 리理가 성性이다. 그럼,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사물에도 성性이 있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현상세계天下에 성性이 없는 사물은 없다. 한 사물이 있으면 그 성性이 있는 것이고 사물이 없으면 성性 또한 없다."고 했다. 현상세계의 각 사물의 성性은 본래 그 사물의 리理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인간과 사물은 모두 기氣를 받아 생성된다. 그러나 그 맑음精과 거칠음粗을 논하면 인간은 바르게 통하는 기氣를 얻으나 사물은 한쪽으로 치우친 기氣를 얻는다. 인간은 바른 기氣를 얻으므로 리理가 통하는 데에 막힘이 없지만 사물은 한 쪽으로  막힌 기氣를 얻으므로 리理가 막혀서 지각知이 없다. 사물 가운데 지각이 있는 것이 있으나 겨우 한 쪽으로 통하는 것에 불과하니, 까마귀가 효를 알고 수달이 제사를 아는 따위이다. 그래서 개는 지킬 줄만 알며 소는 밭갈 줄만 안다."고 했다. 인간이 받은 기氣와는 다르게 사물이 받은 기氣는 치우치고 막혀있기 때문에 리理가 온전히 드러나지 못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기二氣와 오행五行은 태초에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만 이리왔다 저리갔다하는 사이에 부정不正한 것이 생겼다."고 하였다. 리理는 완전하고 지극히 선善하다. 그러나 리理가 기氣에 붙어 실현될 때는 기氣에 얽매여 완전해질 수 없다. 마치 원圓의 리理는 완전한 것이지만 현상세계 속에서 사물화되면서 불완전한 원圓이 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의 불완전성은 기氣에 얽매인 탓이다. 인간도 맑은 기氣를 얻은 사람, 탁한 기氣를 얻은 사람이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인간이 타고나 바는 희미하거나 빛나고, 맑거나 탁한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빛나고 맑은 기氣을 타고난 인간이 성인聖人이고 희미하고 탁한 기氣를 타고난 인간이 어리석은 자이다. 주자는 맹자, 순자 이래로 유가儒家에서 논쟁이 되어온 성선性善, 성악性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 주자는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대하여 말하기를 "횡거에 따르면 형形이 생긴 후에 기질氣質의 성性이 생겼으니 그것을 잘 돌아보면 세계天地의 성性이 실현될 수 있다. 또 명도에 따르면 성性을 논하고 기氣를 논하지 않으면 부족하고 기氣만 논하고 성性을 논하지 않으면 빛나지 못하므로 이 둘을 따로 여기면 옳지 않다. 또한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性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에는 날 때부터 그러한 모습狀이 없은 인간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기품氣稟이 그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氣를 논하지 않는다면 저 성선性善에 이르는 리理는 부족한 것이 된다. 또 기품만 논하여 어떤 기품은 선하고 다른 기품은 악하다고 하면서도 하나의 공간處에 붙어있는 리理를 논하지 않으면 명백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주자는 횡거, 즉 장재와 명도, 즉 정호의 말을 언급하면서 성性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성性은 세계天地의 성性과 합일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인간은 성性의 차이가 있으므로 누구나 세계의 성性과 합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性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인간마다 기氣의 청명과 혼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자에 따르면 성즉리性卽理이므로 성性은 선할 뿐이다. 그러나 현상세계에서 인간이 선할 수 없는 이유는 기질氣質의 차이 때문이다. 주자에 따르면 인간이 말하고 움직이고 활동하는 모든 것들이 다 기氣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마음의 영靈이 알아서知 깨닫는覺 것은 기氣 때문만이 아니라 알아서 깨닫는 리理가 먼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리理는 기氣가 모여붙어 형形을 이룬 후에 리理와 기氣가 합해아만 지각할 수 있다. 마치 저 등불의 경우처럼 기름을 얻어야 온갖 불꽃이 생기는 경우와 같다."고 하였다. 지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각의 리理와 기氣가 합해야 한다. 재미있게도 우리의 지각은 이미 현상세계에서 실현된 것이므로 이미 리理와 기氣가 결합한 이후의 일이다. 이미 우리의 지각은 영적인 기관靈處인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영적인 기관, 즉, 영처靈處는 마음心일 뿐이고 성性이 아니다. 또 성性은 리理일 뿐이다."고 하였디. 주자는 말하기를 "성性, 정情, 심心은 맹자와 횡거가 잘 말했다. 인仁은 성性이고 측은은 정情이니 마음心上에서 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다.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거느리는 것이다. 성性은 이렇게 합하는 것으로서 단지 리理이므로 사물이 아니다. 사물이라면 선하거나 아니면 악할텐데 선악이 없는 단지 리理이므로 선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성性은 리理로서 사물이 아니므로 선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정情은 현상세계의 사물이므로 반드시 마음心上에서 나온다. 재미있게도 성性은 기氣에 붙어있는 리理의 성性이므로 마음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괄한다心統性情. 주자는 말하기를 "성性은 마음의 리理이다. 정情은 마음의 운동動이다. 재才는 정情을 붙들어 모은다. 정情과 재才는 서로 매우 가깝다. 다만 정情은 물을 만나 물결처럼 붙들려 나아가는 것이라면 재才는 그렇게 붙드는 것이다. 요컨대, 천가지 만가지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따라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재才는 마음의 힘으로서 붙들거나 놓는 기력氣力이 있다. 즉, 마음心이 물이라면 물의 리理는 성性이다. 물이 동요하는 것은 정情이고 물이 넘치는 것이 욕망慾이다. 따라서 물의 재才는 기력氣力으로써 물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다. 정이에 따르면 성性은 신天으로부터 타고나는 것이고 재才는 기氣로부터 타고난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성性은 오직 일정一定하지만 정情과 마음心과 재才는 합하여 기氣가 된다."고 하였다.


4. 주자의 수양법

본체세계의 리理는 현상세계의 인간 내부에서 성性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인간 내부의 성性은 리理를 본뜨고 있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인仁, 의義, 예禮, 지智는 성性이다. 성性은 포착될 수 있는 형形이나 그림자가 없고 오직 리理만 있을 뿐이다. 오직 정情만 직접 얻어 볼 수 있는데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가 바로 그 정情이다."라고 하였다. 리理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로서 추상적이므로 흔적과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리理가 현상계로 초월한 성性을 갖고있다. 즉, 마음이 측은한 정情의 성性은 인仁이고 수오한 정情의 성性은 의義이고 사양한 정情의 성性은 예禮이고, 시비한 정情의 성性은 지智이다. 인간의 성性 속에는 인, 의, 예, 지 뿐만 아니라 리理의 전체상全體象인 태극이 있다. 성인이란 기품의 치우침을 제거하여 막힘없이 태극을 드러낸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공자는 사심私心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라克己復禮고 했고 <중용>은 중中으로 화합하고 덕성을 높이고 배움으로 도道에 들어서라고 했다. <대학大學>은 빛나는 덕을 밝혀라明明德이라고 했고 <서書>는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미미하니 오직 하나一를 향하여 정진하고 진실로 중中을 잡아내라고 했거니와 성인은 신의 리 즉, 천리天理를 실현하고 인욕人慾을 소멸할 것을 가르쳤다."고 했다. 주자에 따르면 인성人性은 본래 선善하다. 따라서 인욕人慾을 제거하면 선성善性이 드러나게 된다. 인욕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격물格物, 즉 사물의 본질을 바르게 연구해야 한다. 정호에 따르면 인간은 마음에 이미 하나의 밝은 빛이 존재하므로 경敬함으써 그 빛을 실현하면 인욕人慾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 또한 인仁의 실현은 자신에게 달려있지 남에게 달려있지 않다고 했다. 주자는 말하기를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있다고 함은 내 앎은 사물과 마주하여 그 리理를 연구해 낸다는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영靈하므로 모든 앎이 구비되어 있고 현상세계天下의 모든 사물은 리理를 내재하고 있다. 다만 그 리理를 제대로 연구해 내지 못한 때문에 내 앎이 부족한 것이다. <대학>에 따르면 배우는 자는 먼저 현상세계天下의 모든 사물을 접하면서 스스로 그 리理 더 연구하여 그 극치에 달하여야 한다. 힘써서 오래도록 연구하면 문득 활연관통豁然貫通, 즉 저절로 뚫려 깨닫게 되면 사물의 안밖과 깊이, 표면表裏精粗이 전부 파악되고 내 마음의 본체적 기능全體大用이 밝혀진다."고 하였다. 주희가 말하는 격물格物이란 사물의 리理를 연구하여 그 극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자의 격물설은 나중에 육상산과 왕양명의 육왕陸王학파의 비판을 받는다. 육왕학파는 주자의 격물설格物說이 무질서支離하다고 공격한다. 그러나 주자의 격물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현상세계의 사물의 리理를 연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 성性의 리理를 연구하는 것에 귀결되므로 리理를 더 연구할 수록 인간의 성性은 더 밝아진다. 문득 활연관통하여 깨닫게頓吾하게 되면 사물의 리理가 나의 성性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때 돈오자는 사물의 안과 밖, 깊이와 표면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본체와 그 놀라운 기능도 알게된다. 주자가 말하는 격물格物의 목적은 인간 마음의 전체대용全體大用을 밝히는 데 있다. 이것이 주자의 포인트이다.


5. 정치철학

각 사물마다 리理가 있으므로 국가 사회의 조직도 다 리理가 있다. 이 리理를 따르는 것이 도道이다. 플라톤의 철인왕은 현상세계을 초월하여 선善의 이데아를 목격한 자이다. 이 수준이 되어야 뭇 사람을 주재할 수 있다. 주자도 플라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인간의 성性에는 본체세계의 리理가 이미 구비되었으므로 막혀있는 기품氣稟을 제거하여 리理를 밝히는 것이다. 주희는 국가의 통치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하, 은, 주 삼대三代의 지배자는 도심道心, 즉 세계의 , 천지지성天地之性에 따라 의리義理를 도모하였으므로 왕정王政도 패정覇政도 아니었다. 반면에 한당漢唐의 영웅호걸 지배자는 인심人心, 즉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리理를 벗어나 의義가 아닌 리利를 좇았으므로 패정覇政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주자의 정치관에 대한 포인트이다. 한편 진량陳亮은 옛 성현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공허한 도덕을 거부하면서 실사實事와 실공實功을 도모한 영웅들을 받들었다. 진량은 리理와 욕慾의 분리들 반대하면서 인간의 희노애락도 인의예지와 같은 성性이라고 보았다. 이 설說은 이단으로 간주되었으나 그후 황종희에게 영향을 주었다.


6. 불교비판

주자에 따르면 불가佛家는 성性을 공空으로 여기지만 유가儒家는 성性을 실實로 여긴다. 당시 불교의 학설은 무無로 보았고 노자의 학설은 공空으로 보았다. 그럼, 무無와 공空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공空은 유有와 무無를 겸한 말이다. 도가道家는 반은 유有이고 반은 무無라고 주장하면서 이전已前은 모두 유有이지만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유有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것은 공空이다. 그러나 불가佛家는 모든 것이 무無라고 주장하면서 이전已前도 무無이고 현재 보이는 것도 무無이며 색은 공이요, 공은 색이라고色卽是空, 空卽是色 한다. 크게는 모든 일과 모든 사물, 작게는 모든 뼈마디와 조직들을 모두 무無에 귀결시켰다. 그리하여 온종일 밥을 먹으면서도 쌀 한 톨도 씹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옷을 입고서도 실오라기 하나도 걸친 적이 없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불가는 모든 사물을 허깨비幻有로 여긴다. 즉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화엄종에 따르면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은 생멸生滅하고 무상無常하다. 사물이 존재함으로 진여眞如이고 따라서 공空일 수 없지만 사물은 무상無常함으로 공空이다. 즉, 진여眞如로서 존재하는 사물도 허깨비幻有인 것이다. 반면에 유가에 따르면 태극 안에 구비된 온갖 리理는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한다. 리理가 현상세계로 초월한 것이 성性이다. 인간의 성性은 리理를 구비하고 있으므로 공空일 수 없다. 이것이 주자의 포인트이다. 주자는 불가의 공空이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주자는 말하기를 "부처는 마음이 텅 비어空 있다는 것을 보고서 리理를 무無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비록 텅 비어空 있다는 것을 보지만 모든 리理가 구비되었다고 간주한다."고 했다. 부처는 공空을 무無라고 보았지만 주자는 공空을 리理로 보았던 것이다. 또 주자는 말하기를 "유자儒者는 리理가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여기지만 불자는 신식神識은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느다고 여긴다."고 하였다. 인간의 성性은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영원한 리理에 따른 것이므로 리理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리理에 따라 행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불가는 저 마음을 아주 정미하게 갈고 닦아 마치 하나의 물건처럼 한 껍질, 한 껍질 벗겨내어 마침내 극한에 이르기까지 벗겨내어 마음이 빛나면 그것이 성性이고 간주한다. 그 성性이란 유가에서 말하는 마음心일 뿐이다. 상채上蔡(사량좌謝良佐)가 말하기를 '부처가 말한 성性은 성인이 말한 마음과 같고, 부처가 말한 마음은 성인이 말한 의지意와 같다.'고 했다. 마음은 단지 저 리理를 담고 있을 뿐이다. 불가는 저 리理를 이해하지 않고 지각운동知覺運動을 성性으로 간주하였다. 성인聖人들은 봄視에는 봄의 리理, 들음聽에는 들음의 리理, 언어言에는 언어의 리理, 동작貌에는 동작의 리理가 있다고 여겼으니 기자箕子가 말한 바대로 밝음明, 총명聰, 순화從, 공손恭, 슬기睿가 각각 그 리理이다. 그러나 불가는 그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성性으로 여긴다. 따라서 봄과 들음이 밝든지 아닌지, 언어가 합당하든지 아닌지, 생각이 슬기롭든지 아닌지 일체를 상관하지 않는다. 즉 이런 저런 것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성性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리理에 대한 논의를 무조건 두려워하여 없애려고 하니 그야말로 고자告子가 말한 대로 생성한 것이 다 성生之謂性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마음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지각운동을 갖고 있다. 재미있게도 마음은 그 리理를 갖고있고 지각운동인 봄과 들음도 그 리理를 갖고있다. 따라서 마음은 그 성性인 선善을 좇아 활동해야하고 봄과 들음은 그 성性인 밝음과 총명을 좇아 운동해야 한다. 주자에 따르면 불가는 마음 자체를 성性으로 오인하였고, 봄과 들음 자체를 성性으로 오인하였다. 마음은 실제로 있는 것이므로 형이하의 존재이고 마음의 리理는 자존하고 불변하므로 형이상의 존재이다. 주자의 철학은 불교의 유심론唯心論과 다른 실재론實在論이다.  주자는 정이의 리학理學을 계승발전 시켰다. 



7. 육상산陸象山

육상산은 정호의 심학心學을 계승발전시켰다. 양간楊簡의 <상산선생행장行狀>에 따르면 육상산은 송宋나라 무주撫州, 금계金谿 사람으로서 고종高宗 소흥紹興 9년인 1139년에 태어났으므로 주자보다 9살 어렸다. 육상산陸象山의 휘는 구연九延으로서 타고난 기품이 범상했으나 자랑하는 기색이 없었다. 육상산은 <논어>를 처음 읽을 때 지리멸멸함을 느끼다가 그 후 옛 책을 읽는 중에 사방과 상하가 우宇이고 고대부터 현재까지가 주宙라는 말에서 홀연히 깨달아 우주는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은 곧 우주라고 말하게 됐다.

+ 먼저 대체大體를 확립한다
정호에 따르면 배우는 자는 먼저 인仁을 인식해야 하는데 인仁이란 경敬을 참되게誠 실현하면 만사가 그만이었다. 육상산의 학설도 바로 그런 의미이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요전에 누가 내 학문을 비방하면서 말하기를 "먼저 대체大體를 확립한다."는 구절을 제외하면 아무 내용이 없다고 하자,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대꾸했다."고 하였다. 먼저 대체를 확립한다는 갓은 도道가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 곧 도道이며 도道 밖의 일이 없고 일 밖의 도道가 없음을 인식한다는 말이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모든 사물은 마음 속에 빽빽하게 들어있다. 가득한 마음이 우주宇宙를 채우는 것이 리理이다. 또 육상산은 말하기를 "리理가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도道 밖의 일이 없고 일 밖의 도道가 없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도道는 현상세계天下에 충만해 있고 작은 틈도 없다. 사단四端을 비롯한 모든 선善은 신天이 부여한 것이니 인간이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다. 다만, 인간은 스스로 병病이 있으므로 타자他의 상相과 격리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 우주宇宙이지만 늘 편견이라는 병에 사로잡혀있으므로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맹자는 자기 마음을 다 발휘하여 그 성性을 알고 그 성性을 알면 신天을 안다고 했다. 육상산에 따르면 마음은 오직 하나 뿐이다. 나의 마음과 친구의 마음, 옛 성현의 마믐과 미래 성현의 마음은 모두 다같이 하나이다. 육성산은 말하기를 "도道는 우주을 채우고 있으니 숨거나 피할 곳이 없다. 신天의 도道는 음양이고, 현상세계地의 도는 강하고剛 부드러움柔이고, 인간의 도道는 인의仁義이다. 따라서 인의仁義는 인간의 본심本心이다. 우매하고 못난 자는 모자라서 물욕에 막혀 그 본심本心을 상실하고 똑똑하고 잘난 자는 지나쳐서 자기 소견에 막혀 그 본심本心을 상실한다."고 했다. 우주는 인간을 격리시킨 적이 없고 단지 인간이 스스로 우주를 격리시켰다. 따라서 학문을 통하여 마음의 편견을 제거하면 본심本心을 회복할 수 있다. 이것이 육상산의 포인트이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이 리理가 우주간宇宙間에 존재함에는 무슨 장애가 있으리오. 내가 스스로 침몰하여 저절로 유치한 편견에 갇혀 부지불식간에 함정에 빠져드니 높고 먼 바닥高遠底을 더이상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 함정으로부터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그 그물 망을 끊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학문의 목적이다. 수양의 목표는 자아의 해방이다. 자아의 해방이란 자기의 사심私心을 제거하는 수양을 통하여 우주 본심本心과의 간격을 없애는 것이다. 본심本心 안에는 모든 사물과 그 모든 원리, 즉 도道로 가득 차 있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격물格物이란 본심本心을 연구하는 것이다. 복희가 천문과 지리를 연구한 것도 역시 이 본심本心에 전력한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격물格物은 말단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배우고 익히기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익힐지 알아야한다. 본심本心을 아는 것이 대체大體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육상산의 포인트이다. 육상산은 본심을 알고 나먼 육경六經은 주석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인간은 아는 체하는 과오를 인식하고 편견의 병을 없앨 수 있다면 마음은 저절로 밝아지고 이 리理는 저절로 평평해坦져서 사물은 서로 부합한다."고 하였다. 자기의 소견에 치우치면 본심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은 정호가 <정성서定性書>에서 밝혔듯이 마음은 이기심과 편견이 사라질 때 확연대공하여 사물이 도래할 때 순응한다는 말과 일치한다. 육상산은 불교를 비판하며 말하기를 "유교는 의義롭고 공公적이므로 세상을 경영하나經世 불교는 이기적利이고 사적私이므로 세상을 도피出世한다. 육상산은 유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현상세계의 긍정과 부정에 두었다. 또 육상산은 자신의 학문과 주자의 학문을 구별지으면서 주자를 비판하기를 "쉽고 간단한 공부는 결국 오래가고 위대해지지만 지리支離한 학문은 마침내 흔들리고 몰락한다."고 하였다. 오늘 한 사물을 연구하고 내일 한 사물을 연구하는 주자 리학理學의 방법론은 지리하다. 이것이 육상산의 포인트이다. 반면에 주자와 리학자들은 '먼저 그 대체를 확립하는' 육상산 심학心學의 방법론은 공허하고 속빈 강정空疎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노자에 따르면 학문의 추구는 매일 덧붙이는 것이지만 도道의 추구는 매일 떨쳐내는 것이었다.

+ 양간楊簡
양간楊簡은 육상산의 제자로서 그의 학문을 발전시켰다. 양간은 <기역己易>에서 말하기를 "역易이란 자기自己일 뿐이고 타자가 아니다. 역易을 책으로만 여기고 자기로 여기지 않으면 잘못이다. 역易을 세계天地의 변화로만 여기고 자기의 변화로 여기지 않으면 잘못이다. 세계天地는 나의 세계天地요, 변화는 나의 변화이지 타자의 사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심私心은 분열하고 또 사심私心은 저절로 작아진다... ... 나는 혈기나 형체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성吾性은 빛나고 밝히므로 사물이 아니고 또 나吾의 성性은 때에 구애받지 않고 흘러나오므로 질량量이 없다. 신天은 나의 성性속의 상象이고 현상세계地는 나의 성性속의 형形이다. 따라서 '신天은 상象을 이루고 현상세계地는 형形을 이룬다.'고 함은 모두 내가 이룬 것이며 혼연히 융합하여 내외內外가 없게되고 뚫려 통하여 차별이 없게되니 일획一劃으로 충분히 그 명백한 의미를 보게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주간 모든 사물과 그 원칙은 모두 자기 마음의 표현이므로 모든 것이 자기 마음 속에 들어있다. 자기 마음의 성性은 시의적절하게 그 상象과 형形이 합일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자기와 세계의 易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양간의 포인트이다. <중용中用>은 말하기를 "성性의 덕德은 내외內外가 합合하는 도道이므로 때時가 마땅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 때란 이기심과 편견이 사라지면서 명각明覺이 이루어진 때를 말하는 것이겠다. 양간은 말하기를 "어느날 저녁, 나는 본심本心에 대하여 물었다. 육상산 선생은 그 날 있었던 논쟁의 시비是非를 따지면서 답하셨는데 나는 홀연히 이 마음이 맑게 비추는 것을 깨달았고 이 마음은 시작도 끝도 없고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양간은 본심을 깨우친 자신의 경험을 그렇게 써 놓았던 것이다. 

8. 주륙이동朱陸異同

주자와 육상산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자. 주자는 정이의 학설을 이어받아서 리학理學을 완성하였다. 반면에 육상산은 정호의 학설을 이어받아 심학心學을 완성하였다. 주자의 학學은 '성즉리性卽理' 라 할 수 있고 육상산의 학學은 '심즉리心卽理' 라 할 수 있다. 주자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본체세계의 리理와 현상세계의 기氣가 합하여 생긴 구체적 사물이다. 현상세계의 인간 마음 속에는 본체세계의 리理가 초월되면서 생성된 성性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리理를 갖고 있으나 마음이 곧 리理는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신天에 속한 것이 성性이고 인간에 속한 것이 마음心이다."라고 하였다. 즉, 주자는 두 세계을 인정한다. 성性의 본체인 리理는 신天에 속하고 마음의 성性은 현상세계의 인간에 속한다. 반면에 육상산은 하나의 세계만을 인정한다. 즉, 그 세계는 마음과 일체이다. 따라서 육상산은 우주는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은 곧 우주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럼, 육상산의 심즉리心卽理는 주자의 성즉리性卽理와 다른 것인가. 재미있게도 육상산이 말한 마음心은 주자가 말하는 마음心과 일치한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사람은 목석木石이 아니니 어찌 마음心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오관五官으로부터 나온 마음心은 가장 존귀하다. <홍범洪範>은 말하기를 '생각함이 예지이고 예지는 성인을 만든다.'고 했다. 맹자는 말하기를 '마음은 생각하는 기관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고 했다... ... 사단四端은 곧 이 마음心이다. 신天이 나와 함께 하는 판所이 바로 마음心이다. 인간 모두가 이 마음心을 갖고 있고 모든 마음心은 이 리理가 구비되어 있으니 마음心은 곧 리心卽理이다."고 했다. 육상산에 따르면 목석은 마음을 갖고있지 않다. 인간의 마음은 생각하는 기능을 갖고있고 신天 또한 마음心을 인간과 공유하고 있다. 주자도 마음은 영적인 공간靈處이지 성性이 아니라고 했다. 또 주자는 인仁은 성性이고 측은은 정情인데, 성性과 정情은 마음心上에서 생길 수 밖에 없으므로 마음心은 성性과 정情을 통괄한다. 즉,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고 했다. 주자가 말하는 마음은 형이하적 성性과 情을 통괄하는 존재이다. 재미있게도 육상산은 사단四端은 곧 마음心이라고 했다. 즉 측은을 마음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주자는 측은을 마음의 정情으로 보았고 육상산은 측은을 마음으로 본 것이므로 차이가 없다. 즉, 육상산의 말하는 심즉리의 마음心은 주자가 주장한 형이하적 마음心의 설說과 일치한다. 육상산은 신의 리,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을 구별하려고 하지 않았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신天은 곧 리理, 또 인간은 곧 욕慾으로 여긴다면 신天과 인간은 다른 것이 되고 만다."고 하였다. 즉 육상산은 본체세계와 현상세계를 구별하지 않았고 신과 인간을 다르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육상산의 포인트이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형이상적 존재의 측면이 도道이고 형이하적 존재의 측면이 기器이다. 세계天地 또한 기器이다. 모든 사물이 생성되고 소멸하기까지에는 그 리理가 있다."고 하였다. 즉 육상산은 세계를 본체세계와 현상세계로 구별하지 않는다. 육상산은 말하기를 "<역易> 대전에 따르면 '형이상의 존재가 도道이다.'고 했고 '일음일양一陰一陽이 도道.'라고 했으니 음양도 이미 형이상적 존재인데 어찌 태극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육상산은 음양을 형이상의 존재로 보았다. 정호는 "음양은 형이하의 존재인데 또 도道라고 했으니 음양만이 도道이므로 이것을 묵묵히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반면에 정이는 음양은 도道가 아니며 일음일양의 이유가 도道라고 했다. 이 두 설의 차이가 육상산과 주자의 차이였다. 육상산은 일음일양一陰一陽, 즉 하나에서 생성된 음과 양, 즉 구체적 사물들을 도道라고 보았다. 따라서 도道와 기器, 즉 형이상과 형이하의 분별을 승인하지 않았다. 반면에 주자는 일음일양이 도道가 아니라 양과 음이 생성되는 이유를 도道라고 보았다. 따라서 형이상과 형이하의 분별을 강조하면서 태극설로 환원한 것이다. 인식론상 모든 명사는 내포와 외연을 갖고있다. 외연은 구체적 사물로 객관화된 것이므로 문제의 소지가 없다. 그러나 내포의 경우 그 객관적 사물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중세 때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내포, 즉 보편의 문제는 유명론唯名論과 실재론實在論을 탄생시켰다. 인식론상, 주자의 리학은 실재론에 가깝고 육상산의 심학은 유명론에 가깝다. 주자에 따르면 마음心은 형이하의 존재이므로 구체적 개체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반면에 육상산에 따르면 마음心은 현상세계에서 신天과 인간이 공유하게 되므로 마음은 성性을 갖고있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불교에서도 마음을 성性으로 보기 때문에 마음을 벗길대로 벗겨내어 순수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고자告子 또한 생긴 그대로가 성이라고生之謂性이라고 하여 마음을 형이상적 존재로 보았다. 주자는 육상산을 불교와 고자告子와 함께 비유하였는데 모두 추상적 마음을 성性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육상산이 타계하자 주자는 제자들을 데리고 조문을 갔는데 상이 끝나고나서 얼마 후에 '애석하게도 고자告子가 죽었다.'고 하였다. 육상산은 주자와 대적하기 위하여 250년을 기다려야 했다. 후일 주자를 새롭게 대항한 인물은 왕양명이었다.






<참고문헌>

풍우란. 박성규 역. 중국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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