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억사적 맥락에서 본 현장玄裝
현장玄奬은 수나라 말엽에 태어났다. 현장玄裝(600-664)의 속성은 진陳이고 현재 하남성 뤄양 부근의 구씨 사람으로서 13세 때 출가하였다. 현장은 26세 때인 당나라 태종 정관貞觀 3년 인도로 불법을 구하러 떠났다. 현장은 인도에서 16년간 세친(바수만두)과 호법의 불학을 배우고 중국으로 돌아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저술하였다. 현장의 사상은 중국적 경향이 가장 적다. 현장은 당나라 고종 원년인 664년 타계하였다.
2. 유식교唯識敎
유식교에 따르면 모든 중생은 아집我執과 법집法執, 두 집착이 있다. 아집은 자기자신을 실유實有로 집착하는 것이고 법집은 여러 사물을 실유實有로 집착하는 것이다. 유식교는 아집과 법집을 깨뜨려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밝히는 것이다. 아我와 法은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거짓된 현상이다. 식識이란 마음의 식별 작용을 말한다. 규기窺基는 유식교에 관하여 정의내리기를 "내면의 식識은 그 체성體性이 무無가 아니고, 마음 밖의 아我와 법法은 그 체성體性이 유有가 아니다. 식識은 마음의 경계를 벗어난 외부 대상이 실유實有를 갖고있다는 증집增執의 교설을 배제하고 또한, 마음의 식識을 무無로 간주하여 공空에 집착하는 감집減執도 배제하므로 유有와 공空을 모두 떠나서 오직 식識만이 있다는 가르침이다. 마음 밖의 현상法이 존재한다고 보면 생사生死가 윤회한다. 그러나 한 마음一心을 깨달으면 생사生死는 영원히 폐기된다."고 하였다. 마음 밖의 세계를 인정하는 유有와 마음의 식識 또한 없다는 공空을 모두 떠나서 오직 식識만을 인정하는 것이 유식교의 포인트이다. 그러나 식識 역시 의타기依他起라는 것을 유념해두자.
3. 식識의 사분四分
현장은 <성유식론>에서 말하기를 "번뇌하는 식識 자체가 생길 때는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이 서로 나타난다. 현상法에 응하는 상相은 인식능력에 따른 것이다. 소연所緣에 의한 상相이 상분相分이고 능연能緣에 의한 상相이 견분見分이다. 상相과 견見은 그 자체自體에 의존하는 데 그것이 자증분自證分이다. 이 자증분이 없으면 마음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기억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증자증분證自證分이 없으면 자증분을 기억할 수 없다."고 하였다. 번뇌가 생길 때 그 번뇌를 식별하는 인식주체인 능연의 견분과 인식대상인 소연의 상분이 구별된다. 이 견분과 상분의 구별은 자증분의 식識에 따른 결과이다. 또 이 자증분은 증자증분의 식識에 따른 결과이다. 식識은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으로 이분二分하면서 자아현상我法이 설치된다. 이 현상은 거짓된 현상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자아현상我法의 상相은 내부의 식識에 존재하나 분별分別에 의하여 외부 세계로 현현하는 것이다. 존재有하는 모든 사물의 유類는 아주 먼 옛날부터 자아현상我法에 이끌려 실아實我와 實法에 집착한다. 이것은 마치 꿈꾸는 자가 꿈의 영향력 때문에 마음 밖의 외부세계에 온갖 상相을 현현시키면서 그 대상들을 실유實有로 집착하는 경우와 같다. 어리석은 자가 파악한 실유實有와 실법實法은 존재하지 않고(無所有) 그저 허망한 정情에 따라 설치된 것이므로 거짓이다. 내부의 식識이 사아似我와 사법似法으로 변하여 터잡아 존재하지만 진정한 자아현상實我法의 성性은 아닌 것이다. 외부 세계는 정情에 따라 설치施設된 것이므로 식識과 같은 존재有가 아니다. 또 내부의 식識은 반드시 인연因緣으로 생기므로 무無의 경지가아니다."라고 하였다. 현장에 따르면 마음의 식識은 유일한 존재有이다. 그리고 마음을 벗어난 외부세계와 그 현상은 모두 비존재無이다.
+ 아뢰야식識
식識이 처음으로 변하면 제 8아뢰야식識이 된다. 아뢰야식識은 마음의 유정有情이 자기 자아我에로 집착하는 것이다. 아뢰야식識은 모든 현상法의 종자種子를 꽉 붇잡고 있다. 이 종자는 유루有漏와 무루無漏로 나누어진다. 현장은 말하기를 "모든 유정有情은 믿음에 따라서 나오는 것이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무루종無漏種은 훈습熏習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현상法하는 것이다. 나중에 그 번뇌가 믿음에 따라 생성된 것임을 깨달으면서 열정에 대한 이해熏令가 증가해 나간다. 무루현상無漏法이 일어났던 것은 이러한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루無漏가 일어날 때는 열정熏이 다시 일어나 개별적種이 되어가는 것이다. 유루有漏의 개별적 현상法種도 이와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훈습熏習에는 훈습하는 것인 능훈能熏과 훈습받은 것인 소훈所熏이 있다. 제 8아뢰야識에 의한 모든 개별적 현상法種는 제 7식識이 훈습되어 자란 것이다. 따라서 제 8아뢰야식識은 소훈所熏이 되고 제 7식은 능훈能熏이 되는 것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능훈식識은 생성시키는 의식이고 소훈식識은 능훈에 따라 생성된 의식이다. 이것이 훈습熏習의 의미이다. 소훈 속에 있는 종種을 생성시키는 것은 마치 삼이 꽃에 의하여 생성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생성이 훈습이다. 능훈식이 개별 종種에 붙어서 생성할 때 이미 그 원인에 따라 종種을 이룬 것이다. 세 현상三法이 일어난 때는 원인과 결과因果가 같은 때를 맞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양초의 심지가 불꽃을 생성시키고 불꽃은 심지를 그을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원인과 결과因果가 서로 함께 때를 만나는 것은 확고부동한 이치이다."라고 하였다. 유루종有漏種은 유루현상有漏法을 일으키고 유루현상法은 다시 유루種을 생성한다. 또한 무루종無漏種은 무루현상無漏法을 일으키고 무루현상法은 다시 무루종種을 생성한다. 유루종有漏種은 인간의 생사生死를 윤회하게 만들고 무루종種은 인간의 생사를 영원히 벗어나게 한다. 재미있게도, 무루종無漏種은 모든 인간이 다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佛性이 있는 인간이 따로 있다. 한편 우리가 보는 외부대상은 아뢰야식識 속의 종種이 생성되면서 인식된 것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공간處이란 아뢰야식識 속의 공상종共相種이 성숙함에 따라서 색色이 시간器世에 따라 자신의 대상을 외부의 대종大種에 만들어가는 것이다. 유정有情이 변하여 개별적 대상을 이루지만 그 공간이 다르지 않은 것은 마치 여러 등불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비추지만 그 불은 하나의 공간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아뢰야식識의 공상종共相種은 외부세계로 나아가 생성된다. 각 종種의 유정有情은 아뢰야식識을 통하여 외부세계에서 생성되어 사물화된다는 것이다. 등불은 여러 공간을 비추므로 각 공간의 불은 유사해보이지만 그 등불은 사실 하나의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장의 포인트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근신根身이란 아뢰야식識의 불공상종不共相種이 성숙함에 따라 색근色根과 근의처根衣處, 즉 내부의 대종大種과 제작된 사물色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또 아뢰야식識의 공상종共相種은 성숙함에 따라 타신처他身處로부터도 그렇게 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타자가 의도하는 바를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의도義가 있다는 것은 근根이 변했다는 것과 같다. <변중변辯中邊>에 따르면 자기와 타자의 오근五根이 나타난 것은 아뢰야식識의 의도가 의처依處로 변한 것과 같다. 의도는 오직 의처依處로만 바뀐다는 주장은 타근他根은 내게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에 자기와 타자의 오근五根이 나타난 것은 자기와 타자의 식識이 스스로 의도를 바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말은 타지他地에서의 열반이란 자기가 타자의 주검을 마주 보면서 타자를 이어나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규기의 <술기>에 따르면 몸身은 감각기관을 갖고있다. 그것이 근신根身이다. 눈, 귀, 코, 혀, 피부, 즉 오근과 그 감각주체依處는 모두 아뢰야식識 속의 불공상종不共相種이 변한 것이다. 또 타자의 오근과 의처는 자기의 아뢰야식識 속의 공상종共相種이 변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는 타자의 주체依處를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열반에 든 사람의 남긴 시체가 없다면 그것은 식識이 변했다는 뜻이다. 자기의 아뢰야식識 속의 불공상종不共相種이 변하여 감각기관과 그 감각주체依處가 생성되고, 아뢰야식識 속의 공상종共相種이 변하여 타자의 감각기관과 그 감각주체依處가 생성되는 것이다. 현장에 따르면 아뢰야식識은 태초부터 생성소멸하면서 연속하지만 영속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단절되지도 않으면서 유정有情을 표류시키거나 익사시키면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현장은 말하기를 "아뢰야식識의 성性은 끊임없이 찰나찰나 결과가 생기면서 원인이 소멸하는 것이다. 결과는 계속 생겨남으로 단절이 안되고 원인은 단절하므로 영속하지 않는다. 단절하지도 영속하지도 않는 것이 연기緣起의 리理이다. 따라서 아뢰야식識은 늘 항상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타자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아뢰야식識 속의 공상종共相種이 타자의 감각기관과 감각주체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아뢰야식識은 강물처럼 흘러가므로 유정有情을 표류시키고 익사시키기도 하면서 생사生死를 윤회한다. 이것이 현장의 포인트이다.
+ 말나식識
현장에 따르면 처음 아뢰야식識 다음으로 제 7말나식識이 있다. 말나식識은 항상 살피고 헤아리는思量 역할을 한다. 현장은 말하기를 "말나식識은 장식藏識에 연緣하여 네가지 근본 번뇌에 조응한다. 그 근본 번뇌煩惱란 아치我癡, 아견娥見, 아만我慢, 아애我愛를 말한다. 아치는 무명無明을 뜻하는 것으로서 아상我相으로부터 나온 어리석음 때문에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견我見은 아집我執을 뜻하는 것으로서 비아非我가 현상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자아로 삼는 것이다. 아만我慢은 오만傲慢을 뜻하는 것으로서 자아에 집착하여 기고만장하는 것이다. 아애我愛는 아탐我貪을 뜻하는 것으로서 집착한 자아에 대하여 애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네가지는 항상 일어나 마음을 동요하고 혼탁시키며 외부로의 전식轉識을 항상 난잡하게 오염시킨다. 따라서 유정有情은 생사를 윤회하면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에 번뇌라고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인간은 말나식識으로 인하여 번뇌하게 된다. 번뇌란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여 자아를 세우는 것이다. 자아를 고집하는 아치, 아견, 아만, 아애 등 번뇌는 모두 비아非我이다.
+ 전 6식前 6識
현장에 따르면 전 6식識은 여섯 종류인데 6근根과 6경境에 따라 나누어 진다. 전 6식前 6識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이다. 전6 식識은 대상을 식별하는 역할을 한다. 현장은 말하기를 "부처에 따르면 5식識이 근본식根本識에 의지하면서, 연緣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은 마치 파도가 물로부터 일어나는 것처럼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의지하지 않기도 하는 것과 같다. 반면에 의식意識은 항상 일어난다. 단, 무상천無想天에서 태어날 때, 이정二定, 즉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을 얻었을 때, 잠잘 때, 기절한 때는 제외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근본식이란 아뢰야식을 말한다. 전 6식識, 즉 5식識과 의식識은 모두 근본식識인 아뢰야식識으로부터 일어난다. 제 8아뢰야식識과 제 7말나식識은 항상 일어나지만 제 6식識인 의식識은 잠잘 때, 기절한 때, 멸진정을 얻은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섯 감각기관에 따른 5식識은 여러 연緣에 따라서 일어난다. 이 여덟가지 식識이 바로 8식識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제 8의 식識을 마음心이라고 한 것은 마음은 모든 현상 종자法種을 모아서 그 모든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제 7의 식識을 의意이라고 한 것은 의意는 장식藏識에 연緣하여 자아를 항상 생각하기思量 때문이다. 나머지 6가지를 식識이라고 한 것은 식識은 6가지 외부 대상을 식별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심心, 의意, 식識은 변하면서 자아我와 현상法으로 전환된다. 의意의 말나식과 식識의 전6 식識은 사아似我와 사법似法을 실유實有라고 붙잡게 된다. 이것이 아집我執이고 법집法執이다.
+ 아집我執
아집我執이란 자기 자아를 실유實有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모든 아집我執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두 가지가 있다. 선천적인 아집은 원래부터 허망虛妄이 훈습한 내부원인 때문에 항상 신체와 함께 한다. 잘못된 가르침이나 후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것이므로 선천적이다. 아집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항상 그 상相이 계속되는 것으로서 제 8식識에 연緣하여 제 7식識이 스스로 심상心相을 일으키면서 그 심상을 실아實我라고 붙잡는 것이다. 다음, 두 유有 사이가 끊어진 것으로서, 제 5식識에 연緣하여 제 6식識이 총제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심상心相을 일으키면서 그 심상을 실아實我라고 붙잡는 것이다. 이 두 아집我執은 미세하므로 끊기 어렵다. 나중에 도道를 닦아 수없이 익힘으로써 생공관生空觀을 터득해야만 없앨 수 있다. 후천에 의한 아집我執은 현재의 외부 연緣에 따라서 나오므로 신체와 함께 하지 않는다. 잘못된 가르침과 잘못된 후천에 의하여 나타나므로 후천적이다. 후천적 아집我執은 오직 제 6식識인 의식意識의 유有이다."라고 하였다. 생공관生空觀이란 자아我가 공空임을 통찰하는 관법觀法이다. 이 생공관을 통하여 제 7식識과 제 6식識이 만들어내는 심상心相들이 바로 비아非我임을 터득하게 된다.
+ 법집法執
법집法執이란 모든 사물의 현상을 실유實有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모든 법집法執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두 가지가 있다. 선천적인 법집은 원래부터 허망虛妄이 훈습한 내부원인 때문에 항상 신체와 함께 한다. 잘못된 가르침이나 후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것이므로 선천적이다. 법집法執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항상 그 상相이 계속되는 것으로서 제 8식識에 연하여 제 7식識이 스스로 심상心相을 일으키면서 그 심상을 실법實法이라고 붙잡는 것이다. 다음, 두 유有 사이가 끊어진 것으로서, 제 5식識에 연緣하여 제 6식識이 총체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심상心相을 일으키면서 그 심상을 실법實法이라고 붙잡는 것이다. 이 두 법집法執은 미세하므로 끊기 어렵다. 나중에 십지十地를 통하여 수 없이 익혀 법공관法空觀을 터특해야만 없앨 수 있다. 후천에 의한 법집法執은 현재의 외부 연緣에 따라서 나오므로 신체와 함께 하지 않는다. 잘못된 가르침과 잘못된 후천에 의하여 나타나므로 후천적이다. 후천적 법집法執은 오직 제 6식識인 의식意識의 유有이다."라고 하였다. 법공관法空觀이란 모든 현상法이 공空임을 통찰하는 관법觀法이다. 이 법공관을 통하여 제 7식識과 제 6식識이 만들어내는 심상心相들이 비법非法임을 알게된다. 현장은 말하기를 "심心, 의意, 식識의 여덟가지 종種은 속제에 따르면 그 추구하는 상相들이 다르지만 진제에 따르면 그 추구하는 대상相들이 같다. 왜나하면 그 추구하는 대상相들은 무無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제 8식識부터 시작하여 제 7말나식識, 제 6의식識과 나머지 다섯 감각의 5식識의 각 속성은 결국에 무無로 통일되게 되어있다. 이것이 현장의 포인트이다.
4. 일체유식一切唯識
현장에 따르면 아집과 법집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유實有가 아니다. 따라서 그 사실을 깨달아야 고통과 번뇌로부터 탈존한다. 현장은 말하기를 "심心, 의意, 식識 세가지 능변의 식識과 마음판心所은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으로 변한다. 이것을 전변轉變이라고 한다. 견분으로 변한 판을 분별分別이라고 하는데 능히 대상相을 포착取하기 때문이다. 상분相分으로 변한 판을 소분별所分別이라고 하는데 견분에 의하여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리正理에 따른다면 실아법實我法은 식識없이 마음판所이 변한 것은 모두 비유非有이다. 포착하는 이가 없으면 포착되는 사물도 없다. 존재하지 않음非有에도 사물이 실재實物한다면 대상相이 나뉘어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유위와 무위의 것은 실재이든 거짓이든 모두 식識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유식唯識이란 오직 식識으로만 실물實物이 존재하게 되므로 식識은 마음판에서의 현상法이 아니다. 또는 식識의 전변轉變이란 여러 내부의 식識이 외부세계에서 사이비 자아와 현상似我法의 상相으로 변한 것이다. 이 전변이 주체는 분별分別이다. 그 자성自性은 허망분별虛妄分別인데 삼계三界의 마음心과 마음판心所이 그렇다. 세계를 붙잡는 이 마음판이 분별판所分別이다. 즉 이 분별판은 실아법實我法의 성性을 망령되게 붙잡는다. 이러한 분별로부터 외부세계는 거짓 자아와 현상假我法의 상相으로 전변된다. 저 분별판所分別의 성性은 결정적으로 무無이다. 따라서 모든 경우에 식識만이 유有이다. 허망분별은 최종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유有이다. 유唯는 식識없이는 현상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진공眞空의 성性은 유有이다."라고 하였다. 증감增減의 양 극단을 벗어나서 유식唯識의 의미가 이루어지면 중도中道에 부합한다."고 하였다. 유식唯識이란 식識이 없으면 외부세계와 사물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식識 안에 있는 사물만이 성性을 갖는다. 식識이 전변하여 외부세계에 사물화된 대상相들은 무無이다. 그럼, 오직 내부의 식識으로부터 외부세계와 모든 사물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사물이 공간과 시간에 동시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현장은 말하기를 "꿈의 세계와 같다고 보면 그 의문을 해결될 수 있다."고 하였다. 현장은 말하기를 "직관現量하여 깨닫는 순간 외부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후 의식이 분별하여 망령되게 대상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원래 직관現量된 세계는 자기의 상분相分으로서 식識이 전변轉變한 것이기 때문에 유有이다. 의식판에 포착된 외부 사물은 망령되게 있는 것으로서 사실은 없는 것이다. 또한 물질 세계는 물질은 아니고 물질로 보일 뿐이고 외부에 있지 않지만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것은 마치 꿈판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이 실제로 물질이 외부에 있어서 포착하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직관現量은 순수경험을 통하여 세계의 대상을 포착한다. 그럼, 그 대상은 외부 세계에 있었던 것일까. 현장에 따르면 그 포착 대상은 결코 외부 세계에 있지않다. 다만 나중에 의식이 그것을 분별하여 외부세계에 있다고 여긴다. 직관現量이 포착한 대상은 식識의 상분相分으로서 유有이지만 의식판意識所이 포착한 실제 외부세계의 대상은 무無이다.
+ 꿈
외인이 묻기를 "모든 사물이 식識이 분리되지 않은 꿈세계夢境와 같다면 꿈에서 깨어난 후 그 꿈세계夢境가 오직 마음心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게되니 어찌 자기로부터 나온 물질세계色境가 오직 식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모르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현장은 말하기를 "꿈속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알 수 없고 깨어난 후에 되돌아보면서 깨닫는 것처럼 깨어있는 때의 물질세계의 경우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한다. 아직 진정으로 깨어나지 못하였으므로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깨어난 후에는 그 세계의 사물들을 돌아보며 깨닫게 된다. 진정으로 깨어나지 못한 것은 꿈속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부처는 생사生死는 긴 밤長夜이라고 하였다. 아직 깨어나지 못하였으므로 물질 세계色境가 오직 식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자는 큰 깨우침이 있은 후에야 이전은 큰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현장은 장자와 조금 다르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식識으로부터 나온 물질세계에서 깨어난 후에야 모든 사물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현장의 포인트이다.
5. 삼성三性, 삼무성三無性, 진여眞如
+ 삼성三性
현장에 따르면 삼성三性이란 의타기성, 변계소집성, 원성실성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세가지 종種의 자성自性은 마음心과 마음판의 현상心所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마음의 마음판과 마음의 변하는 현상은 여러 연緣에 따라 일어나므로 마치 환상처럼 사유似有로서 나타나서 미혹시키므로 이 모든 것이 의타기성依他起性이다. 어리석은 자는 있거나 없고, 또는 같거나 다르고, 함께 하거나 안 하는 자아我와 현상法에 멋대로 집착한다. 공중에서 피어나는 꽃空華처럼 자성性도 없고 대상相도 없는 이 모든 것이 변계소집偏計所執性이다. 타자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즉, 의타기依他起에 따라서 허망하게 집착한 자아我와 현상法은 모두 공空이다. 이 공판空所에 현시된 식識의 진성眞性이 원성실圓成實性이다. 이 세가지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緣에 이끌려 자신의 마음과 마음판이 허망하게 전변하여 나타난 것으로서 마치 허깨비, 꿈속의 대상, 사물의 그림자 처럼 실재는 아니지만 실재와 비슷하다. 이 현상들은 타자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의타기성依他起性에 속한다. 이러한 헛된 자아我와 현상法에 대한 집착은 변계소집성偏計所執性에 속한다. 자아와 모든 현상에는 식識의 진성眞性이 있다. 이 진성이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삼성三性이란 의타기성, 변계소집섣, 원성실성을 말한다.
+ 삼무성三無性
현장에 따르면 삼무성三無性은 상무성相無性, 생무성生無性, 승의무성勝義無性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첫째, 변계소집에 의거하여 상무성相無性이 세워진다. 이것의 본체 상體相은 허공의 꽃처럼 비유非有세계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의타依他에 의거하여 생무성生無性이 세워진다. 이것은 환상처럼, 여러 연緣에 따라서 생기고 자연성自然性이 없으므로 허망한 집착일 뿐이나 자성性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원성실에 의거하여 승의무성勝義無性이 세워진다. 최고진리勝義는 변계偏計에 의해서 집착된 자아我와 현상法에서 멀리 벗어난 자성性이기 때문에 자성이 없음을 가정한 것이지 자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상무성은 자성이 없고 생무성과 승의무성은 자성이 없다고 가정하지만 자성性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과 마음판은 의타기성에 속한다. 현장은 말하기를 "여러 인연緣에 따라 생성되는 마음心과 마음판心所, 그리고 견분과 상분은 유루, 무루를 막론하고 모두 의타기성이다. 왜냐하면 여러 연緣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모든 마음과 마음판은 타자에 의지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마치 환상처럼 참된 실유實有가 아니다. 마음과 마음판 외부에 실유實有세계가 있다고 망령되게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해 오직 식識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식識만이 참된 실유實有라고 집착한다면 외부세계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처럼 이 또한 법집法執이다."라고 하였다. 마음과 마음판의 모든 현상은 타자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이것이 의타기이다. 이것이 모든 현상의 실성實性이다. 이러한 실성實性을 실유實有라고 집착하는 것이 변계소집偏計所執이다. 모든 현상의 실성諸法實性을 알아야 원성실圓成實에 들어간다. 이 모든 현상의 실성諸法實性이 진여眞如이다. 현장은 말하기를 "진眞은 진실이니 허망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여如는 영원히 그러함으로 변함없음을 나타낸다. 이 진실은 어느 위치에서도 그 자성性이 영원히 같으므로 진여眞如라고 했다. 즉 깊음이 있어 허망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진여와 같은 말로 현상계法界와 실제實際가 있다."라고 하였다. 현장은 말하기를 "공판空所과 무아판無我所에 떠오른 진여는 유有도 무無도 아니므로 말로 할 수 없으나 다른 일체一切의 현상法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이것은 현상法의 참된 이치眞理이므로 법성法性이라고 한다... ... 없다無고 부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있다有고 주장했고 있다有고 집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空을 주장했다. 텅 빈 환상虛幻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참됨實을 주장했고 이理는 망령된 전도倒가 아니므로 진여眞如라고 불렀다. 다른 종파에서 주장하는 사물色과 마음心을 벗어나 영원히 실재하는 현상法으로서의 진여는 다른 경우이다."라고 하였다. 의타기의 실성實性을 실유實有라고 집착하는 것이 변계소집이다. 반면에 모든 현상의 실성實性, 즉 제법실성諸法實性을 실유實有로 보는 것이 원성실이자 진여이다.
6. 오입유식悟入唯識
모든 현상法을 실유實有로 집착하는 것이 변계소집偏計所執이다. 모든 현상法의 참된 속성實性을 알면 원성실圓成實에 들어간다. 재미있게도 모든 현상法이 오직 식識에 의한 것임을 알더라도 실제도 모든 현상을 실유實有라고 집착한다. 그것은 자아我와 현상法의 두 집착으로부터 아직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두 집착으로부터 깨어나기 위해서는 유식唯識이 필요하다. 유식을 깨닫는 데는 5단계가 있다. 현장은 말하기를 "모든 보살을 자량위資糧位 단계에서 식識의 상相과 성性에 대하여 깊이 믿고 이해한다. 가행위加行位 단계에서 점차 포착판所取과 포착능력能取이 점차 덜 차별화되면서 참되게 볼 수 있게 된다. 통달위通達位 단계에서 참되게 통달한다. 수습위修習位 단계에서 참되게 본 진리理에 따라 수없이 닦고 익혀서 그 밖의 장애를 잠복시키고 단절한다. 구경위究竟位 단계에 이르면 장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빛을 깨닫고 미래를 통하여 유정有情의 무리를 교화하여 유식唯識의 상相과 성性을 깨닫도록 한다."고 하였다.
+ 1. 자량위資糧位
수행자는 자량위 단계에서 식識의 상相과 성性을 깊이 믿고 이해할 뿐 이취二取, 즉 포착판所取과 포착능력能取의 구별을 잠복시켜 없애지는 못한다. 이취二取는 유정有情에 따라 아뢰야식識에 숨어있으면서 때에 따라서 나타난다. 이것이 소지所知와 번뇌이다. 포착판所取에 현상法하는 것들을 참된 현상實法이라고 집착하는 것이 소지장所知障이다. 포착능력能取을 구비한 자아我를 참된 자아實我라고 집착하는 것이 번뇌장煩惱障이다.
+ 2. 가행위加行位
수행자는 가행위 단계에서 사물의 명名, 형식義, 자성性, 차별差別 등 여러 현상法은 실재가 없고 오직 자기 마음이 전변하여 임시로 있으므로 그 대상을 실제로 포착할 수 없음을 생각한다. 포착능력能取와 포착판所取는 서로 의존하므로 포착능력식識 밖의 대상은 포착판식識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수행자는 이취二取가 공空하고 세계가 공空하다는 지식을 얻는다. 그러나 공상空相이 있다고 여기므로 한 가지를 세우고 그것을 최고의 진리라고 말한다. 현대철학의 술어로 말하자면 주관과 객관의 존재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유식의 최고 진리성眞勝義性을 믿을 뿐 알고 행하는 것이 아니다.
+ 3. 통달위通達位
수행자는 통달위 단계에서 연세계판所緣境으로부터 보살이 드러날 때 단일한 무분별지無分別智가 마음판으로부터 포착되지 않는 이유는 온갖 잡동사니戱論 종種의 상相이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수행자는 비로소 명실名實로 유식의 최고진리에 머물게 되고 진여를 새긴 것이다. 지혜智와 진여眞如는 평등한데 포착능력能取과 포착판所取의 상相이 모두 없어진 때문이다. 포착능력의 상相과 포착판의 상相이 서로 분별分別한다는 것은 마음판에 온갖 잡동사니가 출현한 때문이다.
+ 4. 수습위修習位
보살은 수습위 단계에서 전의轉依를 깨닫기 위하여 다시 단일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닦고 익힌다. 이 지혜는 포착능력能取과 포착판所取을 벗어나서 온갖 잡동사니戱論로부터 벗어낫기 때문에 그 작용이 신비하여 불사의不思議라고 불렀다. 보살은 무분별지를 닦고 익힘으로써 아뢰야식속의 번뇌장을 끊어 열반하고 소지장을 끊어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다. 의타기성 위의 변계소집성을 전환하여 버리고 원성실성을 전환하여 얻는다. 유식의 진여는 열반과 생사가 의존하는 의존판所依이다. 진여를 깨달으면 곧 열반을 얻으므로 안락하게 된다.
+ 5. 구경위究竟位
보살이 수습위에서 얻은 전의轉依가 구경위의 참모습이다. 번뇌漏는 영원히 끊어졌으므로 번뇌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성性이 빛을 비추어 정화하므로 무루無漏인 것이다. 무루의 계界에는 무한하고 드문 위대한 공덕과 인의因義가 들어있으므로 세상과 세상 밖에서 항상 즐겁고 이로운 일을 낳는다. 보살은 구경위 단계에서 8식이 모두 지혜로 전환된다. 이 때의 식識은 무루식無漏識이다.각종 불신佛身과 불토佛土는 무루식無漏識이 전변轉變한 것이다.
7. 현장에 대한 평가
현장이 인도에서 들여와 소개한 유식唯識 사상은 중국인의 사상과 맞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개인의 식識이 타자에 의존하여 밖으로 세계를 창조한다는 이론은 흄의 극단적인 주관적 유심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전의 승조가 말한 부진공不眞空 사상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환화인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 환화인은 없지 않다. 그래서 부진공不眞空이었다. 그러나 현장은 환화인은 참된 사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장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불성佛性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에게만 있는 무루종無漏種이 타자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의타기依他起에 따라 불성佛性이 실현되는 것이다. 불성은 한 번 생성되더라도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러한 현장의 사상을 그르다고 반박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법장法藏이다.
8. 법장의 금사자론金師子論
법장法藏은 자가 현수賢首이고 성은 강康이다. 법장(643-712)은 원래 강거康居사람인데 할아버지 때 중국에 귀화했다. 법장은 당나라 정관情觀 17년에 장안에서 태어났다. 한 때 현장과 함께 역경사업에 참가했으나 견해가 달라서 그를 떠났다. 법장은 객관적 유심론자에 가깝다. 법장은 그후 두순과 지엄의 설을 발전시켜 화엄종華嚴宗을 세웠다. 법장은 측전무후에게 불학을 알기 쉽게 강론하기 위하여 궁전 앞의 금사자를 가리키며 요점적 이론을 10門으로 나누어 지었다. 그것이 <금사자장金師子章>이다. 법장은 세계를 마음과 물질로 나누면서 세계의 마음을 체體로 보았고 세계의 물질을 용用으로 보았다.
+ 제 1문: 연기가 빛남明緣起
법장은 금사자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금에는 자성自性이 없다. 장인의 기교라는 연緣이 갖추어지면 그 때 비로소 금사자 상相이 생성된다. 따라서 생성은 오직 연緣, 즉 조건에 따른 것이므로 연기緣起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은 본체에 그리고 금사자는 현상에 해당한다. 법장에 따르면 본체는 리법계理法界로서 본래의 그 본성자체로서 오염되지 않으니 자성청정自性淸淨하고 그 성체性體는 깊숙한 곳까지 두루 비추므로 원명圓明이다. 본체와 현상은 물과 물결에 비유할 수 있다. 즉, 물결은 현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사물이다. 금사자는 금을 인因으로하여 장인의 기교를 연緣으로 삼아 생성된 것이다. 이것이 연기緣起이다.
+ 제 2문: 색이 공임을 변별함辨色空
법장은 말하기를 "금사자의 사자 상相은 허虛하고 참된 것은 금뿐이다. 사자는 있는 것이 아니지만 금덩이는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사물色은 공空인 것이다. 공空은 자체의 모습自相이 없었으나 빛에 의하여 사물色로 환유幻有되었으므로 색色은 원래 공空이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상세계의 사물色은 사물화幻色된 것들로서 원래 그 사물은 공空이었다. 따라서 현상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색色은 환색幻色이고 공空은 진공眞空이므로 사물에 색色과 공空이 공존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공空은 자체의 모습, 즉 상相이 없으나 빛에 의하여 사물色화 된다.
+ 제 3문: 3성의 약술約三性
법장은 말하기를 "금사자에 사자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 변계偏計이고, 사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의타依他이고, 금의 본성金性이 불변하는 것이 원성圓成이다."라고 하였다. 사자는 실제로 있는 것實有가 아니지만 인간의 변계偏計때문에 사자가 있다고 집착하게 된다. 또 금사자의 사자가 환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상相은 자성이 없고 의타依他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금사자의 금은 불변하는데 진심眞心의 본체는 항상 불변하므로 원성圓成이다.
+ 제 4문: 무상이 드러남顯無相
법장은 말하기를 "금사자가 융해되면 금 이외에 사자 상相은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무상無相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본체인 진심眞心이 현상세계에서 현현하면서 사물화된다. 이러한 환유幻有는 환영으로서 유有가 아니므로 무상無相인 것이다.
+ 제 5문: 무생의 설명說無生
법장은 말하기를 "금으로부터 사자가 생성될 때 단지 금만이 생기고 금 이외의 다른 사물은 없다. 사자가 생기고 소멸하더라도 금덩어리는 증감이 없으므로 무생無生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것이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이다. 마음은 연緣이 작용에 따라 사물을 생성시키기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물은 환유幻有된 유有이므로 진정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므로 무생無生이다.
+ 제 6문: 오교의 논술論五敎
법장은 말하기를 "첫째, 사자는 인연因緣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法으로서 생각에 따라 생성하고 소멸되기도 하므로 사자의 참 상相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우법성문교愚法聲聞敎이다. 둘째, 이러한 연緣에 따라 생성된 사자의 현상法은 저마다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철저히 공空일 뿐이다. 이것이 대승시교大乘始敎이다. 셋째, 사자의 현상法은 철저히 공空이지만 자연스럽게 환유幻有되어 있는듯이 보이는 것은 의심할 바 없으므로 연緣에 따라 생성된 가유假有와 쌍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승종교大乘終敎이다. 넷째, 이 두 상相이 서로 쟁탈하며 모두 망하면 거짓된 집착이 사라지게되고 무유無有가 힘을 얻으니 공空으로부터 나온 쌍유雙有가 모두 소멸하여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마음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된다. 이것이 대승돈교大乘頓敎이다. 다섯째, 집착이 소멸하여 본체가 드러난 현상法은 하나의 덩어리로 융합됨에 따른 것이다. 큰 용用이 현상한 것은 완전히 참되게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이 분분하여도 얽히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一切이 곧 하나一인 것은 모든 것이 성性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一가 곧 모든 것一切인 이유는 인과因果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본체의 힘力과 작용用이 서로 맞물려 스스로 펼쳐져 나온 것이므로 일승원교一乘圓敎이다."라고 하였다. 사물 상相의 본체는 없고 단지 변계에 의하여 생성될뿐이므로 금사자를 실유實有라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소승의 가르침小乘法이다. 또 사물의 성性은 생성도 소멸도 없으므로 금사자는 의타기에 의하여 현상한 철저한 공空이라는 것이 대승의 가르침大乘法의 가르침이다. 공空의 입장에서 보면 금사자는 환유幻有이고 이러한 금사자의 환유幻有가 유有라는 입장에서 보면 금사자는 공空이 아니다. 그러나 진심眞心에 따라 공空의 입장과 유有의 입장을 모두 소멸하면 언어적 표현은 단절되고 마음에는 아무 것도 남지않게 되는데 그 때 사자가 환유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전체一體이고 전체는 하나라는 것은 금덩이는 금사자로 주조될 수 있고 금사자는 금덩이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제 7문: 10현 범주勒十玄
법장에 따르면
1. 금과 사자는 동시에 주조된다.
2. 사자 눈이 사자를 감싸면 그 전체는 완전히 눈이고 사자 귀가 사자를 감싸면 그 전체는 완전히 귀이다.
3. 금과 사자는 서로 상호작용하여 주조되므로 일一과 多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그러나 금과 사자는 각기 다르고 자기 위치에서 머문다.
4. 사자의 눈, 코, 귀, 입 등은 금으로부터 주조되고 아무런 장애와 모순이 없다.
5. 만약 사자만 보고 금이 안보인다면 사자는 드러나고 금은 숨었기 때문이다. 만약 금만 보고 사자는 안보인다면 금은 드러나고 사자는 숨었기 때문이다. 만약 양쪽을 다 보면 다 드러나거나 다 숨는다. 드러나면 두드러지고 숨으면 비밀이다.
6. 금과 사자는 드러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는 데 아무런 모순과 장애가 없다.
7. 사자의 눈, 귀, 사지, 털에는 각각 금사자가 있다. 모든 각각의 털 속에 있는 사자는 동시에 하나의 털 속에 들어간다. 하나의 털 속에는 무한한 사자가 들어있고 하나의 털에 있는 그 무한한 사자는 다시 하나의 털 속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인드라망경계문이다.
8. 사자를 통하여 무명無明을 드러내고 금金體을 통하여 진성眞性을 밝힌다. 본체理와 현상事를 합하여 아뢰야식을 논함으로써 생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을 얻는다.
9. 사자는 현상세계에서 찰나에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생각의 한 찰나는 삼제三際로서 과거, 현재, 미래이고 각각 다시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지므로 총 구세九世이다.
10. 금과 사자는 숨거나 드러나기도 하고 하나이고 여럿이지만 각각 자성自性이 없고 마음이 전변하여 나온 것이다. 따라서 현상事과 본체理를 논하여 사자와 금을 밝혀낸다.
+ 제 8문: 6상의 개괄括六相
법장은 말하기를 "사자는 총상總相, 차별화된 오근五根은 별상別相, 이 모두가 하나의 연緣에 따라 일어나므로 동상同相, 눈과 귀 등이 서로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이상異相, 모든 근根이 합하여 사자가 되는 것이 성상成相, 모든 근根이 각자 자기 위치에 머무는 것이 괴상壞相이다."라고 하였다. 다섯 감각기관이 회합하여 사물이 완성되면 성상成相이고, 다섯 감각기관이 회합하지 못하여 각자 따로따로 작용하면 사물이 완성되지 못하는 괴상壞相이다.
+ 제 9문: 보리의 성취成菩提
법장은 말하기를 "보리는 도道이고 깨달음覺이다. 즉 본래本 사자가 나와서 고요히 멸寂滅하므로 더 이상 파괴되지 않는 유위有爲의 전체적 현상을 보는 것이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이 길을 통하여야만 지혜의 바다로 흘러들어가므로 도道인 것이다. 즉 태초 이래부터 전도顚倒된 유有는 실제로 원래 무無로 복귀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각覺이다. 전체적으로 종種을 아는 지혜가 보리의 성취이다."라고 하였다. 지혜는 전체지一切智이다.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은 유有가 아니라 유有로 전도된 것이므로 다시 전도되어 무無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전체지一切智이다. 이는 마치 꿈에서 깨어나서 꿈속의 현상이 실재하지 않고 아무 것도 없음을 보게되는 것과 같다. 꿈속의 현상은 유有가 아니라 유有로 전도된 것이므로 깨어나면 그 전도된 유有는 다시 전도되어 무無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꿈 속의 유有를 집착한다면 그것이 미망迷妄이고 무명無明이다.
+ 제 10문: 열반에 듦入涅槃
법장은 말하기를 "사자와 금, 두 상相이 모두 없어지면서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 즐거움과 불쾌함이 펼쳐지고 마음은 바다처럼 편안하여 망상이 없어지고 아무런 갈등도 느끼지 않는다. 구속과 장애를 벗어나 고통의 근원을 영원히 버리는 것이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수행의 최고경지이다. 금과 사자의 두 상相이 사라지고 본체세계를 맞이하게 되면 모든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것이다.
+ 객관적 유심론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객관적 유심론과 주관적 유심론으로 나누어진다. 불학은 원래 주관적 유심론으로서 개체의 심心만을 인정하여 인과응보로부터 생사윤회를 주장한다. 그러나 객관적 유심론은 전도된 세계의 유有를 본래의 무無로 환원할 것을 주장한다. 객관적 유심론의 대표적인 예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다.
<참고문헌>
풍우란. 박성규 역. 중국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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